김경수 선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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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선로반 문지방세

김경수 선로이야기 2020. 5. 22. 12:16

[아리랑/조정래 글 중에서

1900년 7월 한강철교를 준공하고 11월에 경인철도를 개통시킨 일본 사람 들은 다음 해 8월부터 경부선 철도공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4년 동안 부역이 강행되면서 철도공사는 이제 연말 완공의 막바지에 이르러 있었다.

 

이것저것 이름 붙인 잡세가 30가지가 넘었는데, 애를 낳았다고 출산세, 사람이 죽었다고 출상세를 물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군 수 떠난다고 송별세, 군수 새로왔다고 부임세, 관청 출입했다고 문지방세, 타작했다고 타작세, 술 빚었다고 탁주세. 길삼 철이라고 길삼세, 돼지 세 끼 쳤다고 양돈세, 그 이름을 헤아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 아리랑 글 중에서

 

 

철도 선로반 문지방세

철도선로반에도 처음 들어가면 문지방세를 내야 한다.

이 문지방세를 설명하기 위해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에서 몇 줄 퍼 왔다. 그러고 보니 일제강점기 일본이 철도를 건설하고 관리해서 그런가 그래서 선로반에는 막걸리를 사야 하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가 보다. 

내가 1976년도에 선로반에 첫 발령을 받아 입사하여 신고식으로 막걸리를 샀는데 이름이 "문지방세"이다. 그 문지방세가 요즘에도 있다는 예기를 들으니 옛 추억이 생각나 몇 자 적어본다.

 

문지방세 외에도 철도 선로반에 입사해서 처음 작업복을 받으면 "착복주", 처음 작업화을 받으면 "착화주", 공무원증을 받으면 "공무원증주," 철도무임승차증을 받으면 "승차증주"(당시에는 철도공무원 무임승차증을 발급하여 주었음), 수평계이지를 잡으면 "물반주" 등 등의 많은 이름을 붙여서 막걸리를 사다 먹었다.

막걸리는 주로 오후에 세참으로 사다 먹거나 아니면 하루 철길보수 작업을 마치고 선로반에 들어와서 막걸리와 술안주를 사다가 퇴근하기 전에 몇 잔씩 먹으면서  하루 일과의 정담도 나누고 하다가 퇴근을 한다. 어떤 날은 회식자리가 길어지면 저녁 8시를 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못 먹는 난 그래도 기다렸다가 뒷설거지를 다하고 퇴근을 해야 했다. 

 

선로반에서 레일교환하는 작업

 선로반은 철길보수 작업은 침목을 교환하고 자갈다지기로 곡굉이와 삽질을  해야 하고, 침목과 레일을 운반하기 위해 목도를 해야 한다.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해야 하니 점심으로 도시락을 쌓와서 먹어도 오후 세 내시경이 되면 허기가 지고 뱃심으로 노동을 해야 하는데 이때 세참으로 막걸리 몇 잔 들이켜고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한다.  

그 때는 나이도 어리고 처음 발령받아 주머니 사정도 어려운데 이런저런 이름을 붙여 막걸리를 자수 사라고 하고, 또 술 심부름도 해야 하고, 퇴근도 못하고 남아 있다가 설거지도 해야 하고, 불만이 많았는데  차 춤 선로반 일에 적응해 나갔다.

 

철도 선로반은 각 역마다 철길 보수를 담당하는 작업반으로 작업인원은 책임자인 선로수장(지금은 시설선임장) 그리고 수장을 보좌하는 실질적으로 철길에서 작업을 주관하는 작업반장인 부수장 그리고 작업원7,8명 정도 해서 8.9명 정도가 한 개의 선로반이다. 이들 작업인원이 매일 선로반에 츨근을 하면 선로 수장의 작업지시를 받고 부수장의 인솔 하에 지정된 철길에 가서 철길보수작업을 한다.

 

선로반에는 정식으로 조직도에도 없는 이름이 또 있다. 선로반 직원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이가 "좌상" 그리고 나이가 가장 적은 막내가 "총무"(서무라고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이다. 좌상은 나이가 많으니 철길 보수작업 경험도 많아서 철길에 작업하러 나가면 오늘 작업을 위해 어떤 공기구를 가져가야 하는지, 철길 어디가 휘험한지를 직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챙기는 분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안전관리자라고 해야 할지,

 

 또 좌상은 철길 어디에 샘물이 있는지(당시에는 빈 주전자를 갖고 나가서 식수를 샘터에서 길러다 먹었음), 계절마다 산딸기, 산나물 등이 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다. 쉬는 참에 산나물을 뜯어다 점심 도시락 밥반찬도 하고 술안주도 한다. 좌상은 철길 옆 민가 누구내 집에 기재사가 드는지, 어르신 생신이 드는지를 알고 세참으로 막걸리와 술안주를 얻어다 먹기도 한다. 7,80년대 철길 옆 농사를 하는 농민들은 선로반 직원과도 잘 알고 이웃처럼 지냈다.

 

철길에서 선로 보수하다가 여름에 비가 오거나 겨울에 눈이 오면 철길 옆 농가 사랑방에 가서 점심을 먹고 쉬기도 하고, 여름 날 점심에 오이나 고추, 상추를 얻어다 먹기도 했다.

 

  그래서 좌상은 "하늘과 동창생이다"라고 한다. 좌상은 철길에 작업하러 이동 중 공기구를 운반하는 호니카는 절대로 끓지 않는다. 그리고 좌상은 레일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하는 작끼(작키)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작키는 무겁고 위험하므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직원이 사용한다.) 좌상은 누구보다 아침 일찍 출근을 하여 사무실 청소도 하고 겨울철이면 난로에 불을 피워 직원들 젖은 신발도 말려놓고 따뜻하게 물도 대워놓고 한다. 좌상은 선로반에서 직책은 없지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다. 어떤 때는 직원들이 막걸리가 먹고 싶으면 좌상 투표를 하자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땐 좌상은 미리 알고 막걸리를 사기도 한다.

 

선로반에서 나이가 어리거나 신규자는 총무라고 하여 선로반에서 술 심부름 등 잔 심부름을 한다.  외상으로 술도 사 오고, 직원 들 담배 심부름도 한 후 수첩에 적어 두었다가 봉급 날이 되면 수금을 해서 외상값을 지불하기도 한다. 첫 발령을 받아 선로반에 가면 신규자라고 하여 일정기간(1,2년) 위험한 일은 시키지 않는다. 물 떠 오기 그리고 겨울에는 모닥불 피워서 물끓이기(겨울에 철길에서 일하다 점심먹을 때 따뜻한 물을 먹여야 함으로), 술 받아오기, 공기구 운반 등 주로 잔 심부름을 한다.

 

선로반에서 하는 일이 공기구도 그렇고 일반사회에서 접하기 힘든  일이다. 난 선로반에서 공기구 이름 외우는 것도 한참 걸렸다. 빠루 종류도 대꼬바루, 곰바루, 라이닝빠루, 뎀핑빠루, 스냅빠루, 그리고 천자, 비터, 찐쬬, 우매기, 개시기 등 용어가 선배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철길에 나가면 또 철도에 사용하는 재료들 이름이 특이하다. 이것은 아마도 일제강점기 철도가 건설되고 일본 사람에 의해서 철길보수를 배우다 보니 일본어도 아닌 한글도 아닌 언어가 선로반에 생겨 전해내려 온 것 같다. 

 

선로반 직원들은 매달 얼마씩 모아서 총무가 관리를 한다. 이 돈을 "도중 돈"이라고 한다. 그래서 힘든 선로보수 작업을 하다 오후에 출출하면 세참으로 막걸리와 안주를 사다먹기도 하고 봄이면 봄놀이, 여름이면 물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 겨울이면 윷놀이 등 계절마다 이름을 지어 주로 토요일 하루 날을 잡아 놀았다. 당시에는 토요일 반나절 작업을 했는데 분소장이 눈감아 주고 하루 놀았다. 

 

이렇게 1,2년 신규 자생 활을 하면서 차 춤 선로반 일에 적응이 되고 육체노동이 힘들지만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갔다. 

 요즘은 잘모르겠다. 선로반이 어떤지를 얼마전에 선로반에서 "점심을 해먹는다". "문지방세를 내라고 한다" 등 말들이 있다고 어느 후배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반세기 동안 직원으로 수장으로 분소장으로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해봤을 때 선로반은 7,8명이 합동으로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일해야 한다. 그래야 다치는 사람도 없고 힘들지 않게 일할 수 있다.

 

선로반 직원 들이 함깨 일하다 보면 다 내마음 같지는 않다. 때로는 서로 반목도 하고 오해도 하곤 한다. 언젠가 내가 분소장으로 근무 할때 어던 선로반에 직원들이 서로 의견이 안맞아 점심을 각자 돌아 앉아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확인해 보니 별일도 아닌데 그러는 것 같아 직원들을 석득하고 달래서 오해를 풀고 했던 일도 있다.

 

철도에서는 선로반 직원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다치기도 하고 사고도 많이 나는 편이다. 나도 뒤돌아 보면 죽을 고비를 몇번 넘긴 것 같다. 철길에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기관차에 바치기도 하고 그래도 그때는 역구내서 입환중인 기관차라 기관사는 후방 전호원만 보고 전방주시를 안해서 내가 철길에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했고, 또한 서행중이라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다. 

 

관리자는 신규자도 그렇지만 선로반의 오랜 전통과 작업실정을 이해하고 오해를 풀어가면서 현실에 맞게

변해가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몇자 적어 보았다.  특히 오즘은 토목직으로 공체를 하다 보니 여직원이 선로반에 오는 경우가 있는 데 이것은 아니다 라고 생각 한다. 내가 철도를 관둘 무렵에도 여직원이 선로반으로 발령을 받아 난 처에 있으면서 선로반으로 내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처에 두면서 도면복구 작업도 시키고 현장에 점검을 나가면 같이 대리고 나가 우선 선로를 보여 주기도 했다.

선로반은 온랜기간 남자들만의 성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로보수란 직업이 남자들이 하는 일 중에서도 힘든일이다. 내가 입사할 때도 모래가마니 80kg을 어개에 매고 600m를 가야 1차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요즘 아무리 기계화 작업을 한다고 해도 여자들이 근무하기에는 무리다. 그리고 철길에 나가면 화장실도 없다. 남자들은 대충 구석진 곳에서 볼일을 보지만 여직원은 어디가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것인가. 선로반도 좁아서 여직원 휴게실 화장실 만들기도 어렵고 설사 만든다고 해도 여름철 남자들은 더우면 웃도리를 벗기도 하는데 여직원이 있으면 얼마나 불편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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