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면 선로반 난로에
폐침목 장작으로 불을 지핀다.
그리곤 난로 위에다 주전자나 물통을
올려놓아 물을 데워야 한다.
지금처럼 샤워실이 없어서
겨울에는 난로에 물을 데워서
세수를 했다.
어제 눈밭에서 젖은 신발은
밤새 난로 옆에서 다 말랐는지 확인하고
신발이 날로 열기에 눋지 않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둔다.
산골터널 제빙작업을 위해
선로반에서 터널까지
가는 데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철길은 계곡 사이를
때로는 터널을 통과하여
꼬불꼬불 이어지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개곡 사이 세찬 골 바람은
눈보라와 함께 몸속으로 파고든다.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그리고 곡선 터널은 그래도 바람이 덜한데
계곡과 계곡 사이를 지날 때나
짧은 직선 터널은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장작난로에 데운 몸은
체 10분도 안 되어 얼음장같이 차가워 온다.
내복도 입지 않고
방한복도 입지를 않았고
얼기설기 역은 듯한 도쿠리 옷에
겉에는 작업복만 입었으니 추운 것은
당연하겠지...
그때는 내복이나 방한복은
돈이 없어서 못 사 입은 사정도 있겠지만
젊어서 입지를 않았다.
겨울에 짧은 터널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콘크리트 내부에서 지하수가
동결되어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하지만 긴 터널은
콘크리트 내부 지하수가 결빙되지 않고
터널 천장 또는 벽면을 타고 흘러나와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선로에 얼어붙는다.
선로 바닥이나 벽면에 얼어 붙은 얼음을
곡괭이로 깨면 얼음 조각이 튀어
옷 속으로 들어가
얼음이 녹아 옷이 젖기 시작한다.
깨낸 얼음 조각 들은
가마니에 담아서 우선 선로 옆으로
쌓아 놓는다.
열차가 오면 대패소로 피해야 하는데
대피소가 좁고 얼음이 얼어나와
미끄러워서 겨우 한두명이 피하고
나머지 직원 들은 터널 측벽에 붙어서서
열차를 피한다.
산골 터널은 해방 후 1960년대 건설였고,
그 후 1970년대초 불과 10년도 안되어
터널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 지
일부 구간에 15cm두께로
보강공사를 하여 터널폭이 좁아젔다.
터널 측벽에 붙어서 있으면
열차가 배꼽을 살짝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산골터널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터널 주변 석탄광산으로 누수와
안전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
결국에는 영동선 백산역에서 도계까지
솔안턴널인 루프터널을 개통(2012년 6월 27일)하여
선로를 이설하였다.
선로는 통리와 나한정간 고도차로
기울기가 계속 내리막길이다.
가마니에 담아놓은 얼음을
트롤리로 운반할 때
열차가 통과하면
터널 박에서 기다리던 트롤리를
선로에 올려놓고 터널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트롤리에 얼음을 싣고 운반할 때는
무거우니 내리막 길을 내려오고,
빈 트롤리를 터널로 들러 갈 때는
오르막 길을 올라가도록 작업을 한다.
트로리를 열차가 통과한 후
다음 열차가 오기 전 까지
터널 안으로 들어가 얼음을 담은 가마니를
싫고 나와야 하므로
오르막 길 빈 트로리를 밀고 들어갈 때는
500미터 이상을 전속력으로
밀고 뛰어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트롤리를 밀고다니는 사람은
주로 젊은 직원들이 했다.
난
나이도 가장 어리고 학교 다닐 때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달리기는 잘해서 뛰어다니니
춥지도 않고 재미있었다.
트롤리를 선로에 들어서 올렸다 내렸다
하려면 4명이 필요하여
운반 작업조는 보통 4명이 한다.
얼음 가마니를 산처럼 트롤리에 싫고
터널박으로 나올 때는 선로가
내리막 길이어서 밀지 않아도 됨으로
내명 중 한 사람은 제동을 잡고
나머지 세명은 트롤리에 타고 내려온다.
제동장치는 나무 장대를 지릿대 원리로
트롤리 바퀴면에 닿도록 걸어서
나무 장대를 누르면 바퀴에 마찰력으로
제동이 잡힌다.
이때 나무 장대를 세게 누르다 부러지면
드롤리를 내리막길에서 세우지 못해
계속 가속이 붙어 굴러가다가 탈선진다.
심포리 선로반에는 나이 드신 두 형제분이
근무를 하셨는 데
심포리 통리간 선로가 개통되기 전
인클라인 철도 운행할 때
등짐을 지는 일을 하시다
철도에 들어왔다고 했다.
[인클라인 철도]
두 형제 선배님은 쉬는 시간에
재미있는 옛날 이야도 많이 해주셨는 데
주로 동생분이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형님 되시는 분은 가끔 몇 마디씩
기억이 안 난다든가 틀린 말이 있으면
그건 그랬어 하시면서 몇마디 거들기도
하셨다.
그때 선배님의 말로는
그전에 선로 옆에 콩 농사를 하시는 분이
자동차 길도 없고 하니 콩을 시장에 팔려고
심포리역까지 트롤리로 운반해주기로 하고.
트롤리에 콩을 잔뜩 싫고 나무 장대로
제동을 잡으면서 내려가는 데
나무 장대가 불어 졌단다.
트롤리는 내리막길에 가속이 붙어서
속도는 올라가고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은 트롤리에서 뛰어 내렸다.
트롤리만 정신없이 굴러 갔고,
모두들 큰일 났다고 하며 달려가 보니
트로리는 혼자 굴러가다가
심포리 역 들어가기 전
곡선 분기부에서 원심력에 의해
곡선 외측 언덕 아래로 굴렀다고 한다.
트롤리가 구르면서
콩 가마니가 터져 철길 비탈이 온통
콩으로 누렇게 덮였다고 한다.
[심포리 21호]
난
그 소리를 듣고부터는
나무 장대를 아주 튼튼한 나무를 골라
만들어서 사용했다.
하루 종일 얼음 가마니를
싫었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장갑과 옷은 얼음 물에 젖어서 얼마나 추웠던지
터널 안은 그래도 따뜻한데
터널밖에 나와서 얼음을 내리고 다음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말 추웠다.
그렇게 철도에 입사한 첫해 겨울은
산골터널 제빙(얼음 깨 내는 일) 작업과
제설(철길에 눈 치우는 일) 작업으로
한해를 보냈다.
통리역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추전역 다음으로 높은 역이다.
지금은 산골터널 등 통리 심포리간 터널과
선로가 주변 광산으로 인해 침하되고
위험해서 지금의 솔안터널인 루프 터널을 개통하고,
기존 선로는 철도테마파크인
하이원 츄츄파크 놀이시설을 만들었다.
당시 난 만 19세였고
내 또래 철도고등학교 졸업생이 발령을 받아
같이 일하기도 했다.
난 어려서 농사일도 많이 했고
철도에 들어오기 전 막노동도 해서
그래도 잘 적응했다.
하지만 신호분야에선가 철고를 졸업하고
발령받은 직원은 키도작고 왜소해서 그런지
너무 어려 보였다.
그 친구 추워서 눈물을 흐리고 다니니
선배님들이 어린아이를 돈벌이에 내 보냈다고
놀림반 진심반 안쓰러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한 철도일이 반세기를 지났고
이제 한걸음 물러서서
먼 엣날 이야기처럼 기억을 더듬어
본다.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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