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
어제가 올해 들어 24절기 중 여섯 번째 "곡우"이다 비가 내리면 한해 농사가 잘 된다고 했는데 어젯밤부터 조용하게 비가 내린다.
농사일도 절기마다 해야 할 일이 있듯이 철길에도 계절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봄이 되면 겨우네 얼었던 대지가 녹으면서 돌이 굴러오고 둑이 무너지기도 하고 땅이 꺼지기도 한다. 기차가 다니는 데 이상이 없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철길도 기차가 다니면서 선로가 조금씩 꺼지면서 레일 면이 반듯하지 못해서 덜커덩거린다.
레일 면을 반듯하게 들고 침목 밑에 자갈을 다져 넣는다. 그리기를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는 "춘분"이 지나면 철길 가는 잡초가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큰 개불알풀 꽃이 여기저기서 촘촘히 피어난다. 벌써 4월의 한낮은 20도를 넘어 철길 위에서 일하다 보면 땀이 이마에서 흘러내린다. 잡초도 빨리 크는 놈은 무릎 위에까지 올라온다. 이젠 또 여름 홍수를 대비해서 배수로도 살펴봐야 하고 철길 옆에 택지개발 등 토목공사로 인한 수해 우려 개소도 살펴보고 우기를 대비하도록 당부도 해둔다. 그리고 배수로 정비도 하고 하수구가 막힌 것은 물이 잘 빠지도록 뚫어 놓는다. 한여름을 대비한 제일 큰일은 레일이 늘어나서 방향 틀림이 생기지 않도록 재설정을 하는 일이다. 재설정이라고 하면 여름을 대비해 미리 레일을 달구어서 늘여 놓거나 아니면 유압작크로 강제로 잡아당겨 놀려서 놓는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계절마다 철길에서 일하는 방법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여러 개의 레일을 용접해서 철길을 장대레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레일을 서로 묶어주는 이음매판을 사용해서 철길을 만들었다. 각각의 레일이 균등하게 늘어나도록 레일의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한 "유간정정" 작업을 했다.
철길에 레일을 받치고 있는 침목이 튀어 나가지 않도록 자갈도 넉넉히 받아 놓는다.
이러다 보면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시기인 "망종"이 지나고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가 다가온다. 이때부터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철길은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 잘못하면 레일이 늘어나 방향틀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철길 옆은 잡초가 자라서 호랑이가 나오려고 한다. 사실 곡우 무렵에 철길 옆으로 제초제를 한번 치면 좋은데 봄철에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고, 요즘은 환경오염 문제로 제초제를 안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 보면 여름이 시작된다는 "소서"가 다가오고 삼복더위가 시작된다.
2016.04.21
김경수 코레일선로사랑이야기